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카다 게이스케 (문단 편집) === 사태 이후와 사임 === [[황거]]로 도망간 직후에도 오카다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 또 대차게 까였다. 일단 대장대신과 내대신, 육군 교육총감의 죽음으로 내각과 대장성, 궁정 조직, 군 명령체계가 죄다 혼란에 빠져 일시적으로 기능이 정지된 상태였고, 또 자신의 매부가 자신을 대신해 죽는 꼴을 본 오카다 제독은 그 충격으로 [[공황장애]]에 빠져 내각을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쇼와 덴노가 직접 사태 수습을 지시했는데도 말이다.[* 친지가 죽고 자신도 죽다 살아났으니 일반인이라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사람은 일국의 총리였다는 거지만... 이런 오카다 제독을 보고, 당시 궁내성에서 비서관장으로 일했던 [[기도 고이치]]는 일기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마치 [[쇼와 덴노|어린 아이]]가 [[오카다 게이스케|할아버지]]를 달래는 듯 했다." 실제 나이차는 33세라 쇼와 덴노가 손자뻘이라기보다는 아들뻘에 가깝긴 했다.] 한편, [[쇼와 덴노]]는 쿠데타 당일 오카다 총리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는 고토 후미오 내무대신에게 총리직 대행을 맡겼다가 오카다 제독이 살아 돌아오자 '''이틀 만에 고토 후미오를 잘라버리는''' 빗나간 센스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자기 밥줄이 끊긴 고토 내무대신은 자신의 직책을 되찾(고 진짜 총리까지 되어보)겠답시고 오카다 제독을 [[탄핵]]하는 등, 쿠데타 상황은 그야말로 '''[[막장]]'''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2.26 사건]]에 대해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쿠데타의 희생양으로 린치당한 오카다 총리에게 처음에는 연민의 목소리를 냈었다. 하지만 오카다 제독이 멀쩡히 살아있고, 심지어 내각이 저런 막장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당연히 뒤집혔다 29일, 쿠데타가 진정되고 곧 황도파가 진압당하면서 사건은 종료되었고, 오카다 제독은 예상했던 수순대로 3월 8일 사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